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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와 유대민족
작성자 Dyhalt
작성일 2008/02/09 12:15
조회수 101
인류 역사상, 개인으로서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일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의 시조로서, 그리고 신의 아들로서 알려진 그 이지만 의외로 정치가적 일면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설명 하기에 앞서 당시의 유대민족의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자.
예수가 탄생하기 몇십년 전, 로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영웅에 의해서 황금기를 맞이할 준비를 착실히 쌓아가고 있었다. 유대민족(정확히는 상인들과 사제들)은 카이사르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그것은 카이사르가 종교의 자유 보장과, 상권의 공정성을 기하고, 징세의 공공기관화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이스라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유대민족의 고향은 사막이다. 목축업을 주요 생계수단으로 삼고 사는 민족이라, 가난한 편이었다. 하지만 목축업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었고, 유대인들은 상업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때 벌써 그 유명한 유대 상인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중해 유역의 상권은 그리스 계 상인들이 거의 장악하고 있었다. 그것이 카이사르에 의해서 유대 상인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고, 당연히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카이사르의 암살을 가장 슬퍼했던 것도 유대인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대민족은 제정일치의 종교국가였고,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긍심이 있었다. 아무리 잘해준다고 하더라도 속국이라는 처지는 유대인들의 비위에 안 맞았을 것이다. 성서에서는 유대인들이 로마에게서 엄청난 박해를 받는 것 처럼 나오고 있는데, 실상은 조금 다르다.

로마는 속국에 대해서 병역 제공의 의무가 없는 대신, 속주세로 수입의 1/10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징수 방식이 민간 대리업자가 나라에 먼저 돈을 안치하고, 업자 자신이 돈을 걷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부정이 발생했다(1/10보다 더 걷었던 것이다). 이것을 카이사르가 민간 대리제를 폐지하고 국가기관에서 걷는 형태로 바꾸고,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직접 임명하는 징세관 제도를 창설, 속주 총독이 임의로 세금을 걷거나 세율을 높이지 못하게 바꾸었다. 이리하여 투명한 징세 제도가 확립, 속주의 사람들로써도 수긍이 갈만한 정도의 세금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로마의 속국은 로마와의 상호보호 조약을 맺는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상호보장 덕에 군사력이 약소한 나라들도 전쟁의 걱정 없이 팍스 로마나를 맞이하게 된다)

속국의 경우, 모든 속국이 속주세 1/10이 일률적으로 적용되지는 않았다. 갈리아의 경우, 1/10보다 적었고, 동방의 부유한 국가에서는 더 걷었다. 하지만 결코 무겁다고만은 할 금액은 아니었는데, 그렇다면 속국의 사람들은 세금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었다. 1/10의 세금은 로마의 세금이고, 이와 별도로 해당 국가의 왕이 걷는 세금이 또 존재했다. 로마의 압제는 아니었지만, 세금의 무거움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티베리우스 황제는 아우구스투스 못지 않게 뛰어난 행정가였고, 유대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시기에 격렬한 반 로마 감정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으로 유대와 로마 사이가 험악해 지기시작한건 3대 황제 칼리굴라부터였고, 9대 베스파시아누스 때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그 후 추방되어 떠돌이 민족이 되게 된다.
(여기서 모두 흔히 알고 있는데로 유대 민족이 예루살렘 땅에서 완전히 추방된 건 아니다. 유대 농부들은 그대로 근처 땅에서 살았고, 그들이 바로 현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성서는 예수 시대에 쓰여진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우리가 현재 보는 형태도 아니었다. 즉, 이 때의 안 좋았던 기억 때문에 후의 성서 편찬자들이 예수의 생전에도 심한 박해가 있는 거 처럼 묘사했을 뿐이다.

예수가 생존했던 당시의 로마군은 카이사르 시대를 거쳐, 아우구스투스가 다듬은 세계 최강의 상설 군대. 거기다가 로마인들은 현대의 군대와 같이 교본을 통한, 정규화 된 전투를 수행했으므로, 꼭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 같은 전략의 대가가 아니라도 충분히 강한 군대였다. 그러한 군대를 상대로, 사막의 가난한 작은 나라가 맞서 싸우겠다는 것은, 현실 감각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로마를 몰아낸다고 하더라도, 로마가 만약 전 영토에서의 유대 상인의 활동을 막아버리면 그야말로 앉아서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독립하자고 난리 치는 민중을 유대 정부에서 한심하게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예수가 등장하게 된다. 그는 기존의 유대교가 가르치는 사상이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세계 초 강대국 로마와 더불어 살지 않을 수가 없는데, 유대교는 유대인만을 위한 종교에다가, 유일신교이니 만큼 상당히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종교였다.(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유대교의 신을 보면 잘 알수 있다) 그리고 그 유대교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과격한 무장독립 세력이 결집하였던 것이다.

예수가 보기에 기존의 유대교로는 결국 유대민족 안에서 끝날, 한계가 있는 종교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리하여 유대민족만이 아닌, 모든 민족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의 종교를 생각하게 된다. 유대인만이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사상을 버리고, 폭력을 지양하여 로마와 더불어 사는 것이 유대 민족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민중은 그런 예수를 이해 못하거나, 오해했던 것같다. 예수를 구세주로 떠 받들며, 로마로부터 유대 민족을 해방 시켜줄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제자 유다도 마찬가지였는데, 유다는 회계를 담당하고 각종 서무를 보던, 말하자면 예수가 가장 신뢰하던 예수 진영의 핵심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또한 유대민족의 독립을 바라는 무장 세력 중 하나의 일원이기도 했고, 유대민족을 해방시켜줄 구세주로서 예수를 섬겼던 것이다. 그러했던 그였기에, 예수의 생각을 알고 분개해 예수를 팔아버리게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예수는 이렇듯 종교 지도자로서만이 아닌, 뛰어난 현실 감각이 있는 정치가적 일면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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