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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유
작성자 Dyhalt
작성일 2008/02/08 09:59
조회수 80
임진왜란은 일본 전국시대의 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침략 전쟁이다.
우리나라로 보자면 엄청난 타격을 입은 전쟁이었는데, 전쟁 전 쌀 생산량이 150만 결에서, 3년 후 (임진왜란 1차 종료 2차는 정유재란이라 불린다) 30만 결로 줄고, 인구도 엄청나게 줄어버려 보통이라면 나라가 망할 타격을 입었다. 큰 타격을 입긴 했지만, 우리는 나라를 지켜내는데 성공했고, 이리하여 이 전쟁은 일본에서도 실패한 전쟁으로 남게 되었다.

보통은 히데요시의 과욕이 부른 전쟁으로 생각을 하지만, 실은 그리 간단한게 아니다. 현대의 병사들은 절도와 품위를 갖추는 걸 당연하게 생각 할 정도로 의식 수준이 높지만, 고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정규군이라고 할지라도 반 산적떼나 다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삼국지만 봐도 조조가 여러 번에 걸쳐 병사들에게 민중에게 폐 끼치는 것을 엄금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만큼 정규군의 약탈은 일상적이었던 것이다. 중국 뿐만이 아니라, 시민병으로 이루어져 있어 의식 수준이 비교적 높았던 로마 군단은 물론이고, 중세의 십자군, 2차 대전 당시의 러시아군도 약탈로 유명했다.

전쟁 도중 뿐만 아니라, 전쟁을 하지 않는 기간의 군대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했는데, 군대를 그냥 놀리게 되면 기강이 해이해 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군대란 원래 생산을 안 하고 소비만 하는 집단이기에 놔두면 경제적으로도 손실이었다. 해서 로마의 경우, 병사들을 토목 공사에 투입하곤 했다. 로마의 수 많은 도로, 다리, 둑 등은 많은 경우 로마의 군단병들이 건설한 것이다.

히데요시의 경우, 이 '관리법'이 조선 침공이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정규군이라고 할지라도, 반 산적의 무뢰배들이 많았고, 이 들을 그냥 두면 사회적 불안도 증가할 뿐더러, 반란의 위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불어 급료의 지불에 필요한 자금도 필요했을 것이다)
비슷한 경우로 진의 시황제가 있는데, 그는 통일 후, 적국 출신의 병사들을 만리장성 구축에 투입하여 군사력을 소모케 했다.

여하튼, 진시황과 마찬가지로 히데요시 또한 성공적인 병력 소모에 실패해, 원망을 사게되었고, 세력 약화로 이어져 히데요시의 천하는 자신 1대로 끝나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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