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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드라마 로마(Rome)와 역사
작성자 Dyhalt
작성일 2008/04/02 09:57
조회수 130
드라마 Rome은 매우 잘 만들어진 드라마로, 보는 이로 하여금 진짜 역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드라마 자체에서도 왜곡 되거나 픽션이 교묘하게 섞인 부분도 있고, 자막 번역자들의 난립으로 인해 자막 끼리도 통일성이 없는게 눈에 띄었다.

떠도는 여러 자막의 제일 큰 문제점은, 어떤 인물은 영어식 표기로, 어떤 인물은 라틴어 표기로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것 부터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시져.
'가이우스 줄리어스 시져'는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고, 라틴어로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안토니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영어식으로 마크 안토니.

옥타비안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옥타비안은 영어식.
아버지 또한 옥타비우스였기 때문에 옥타비아누스라고 불렸다. (작은 옥타비우스란 뜻)
카이사르의 유언을 받아들여, 그의 양자가 되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가 되었다. 후의 아우구스투스.

시세로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시세로는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키케로에서 특이할만한 점은 어떠한 자막이라도 키케로는 시세로라고 표현하지 않고 키케로라고 표현했다는 점이다.

폼페이
초반의 주요 인물 폼페이. 라틴어로는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드라마에서 역사적 인물들과 상반된 위치에서 대등한 존재로 드라마를 엮어 나가는 두 군인 풀로와 보리누스는 실존 인물이 아니므로 영어식 표기든 아니든 상관 없다.


역사 쟁점 파트

1) 카이사르의 간질
카이사르가 간질이 있는지 없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로버트 사임이나 티투스의 경우는 있다고 보았고, 시오노 나나미의 경우, 당 시대에 카이사르의 간질에 대한 언급이 없어 근거가 없고 후대에 만들어진 얘기라고 보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있는 편이 얘기가 재미있게 풀어나기기 좋았을 것이다.

2) 옥타비아누스와 옥타비아의 근친상간
완전한 픽션. 무시하자.

3) 결혼한 보리누스
로마의 병사들은 완전 제대까지 결혼이 금지되어있었다.
그래서 보리누스는 '자신은 특별히 허가를 얻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긴 한다.
보리누스의 비극을 풀어가기 위한 설정이지만, 안타깝게도 사령관 급도 아닌 백인대장에게 결혼이 허락 될리가 없었다.

4) 카이사르가 세르빌리아 때문에 폼페이우스를 추격하지 않았다?
역사와 드라마가 크게 다른 부분 중의 하나.
먼저, 카이사르는 로마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카이사르가 로마로 입성하기도 전에 폼페이우스와 원로원 의원들이 수도를 탈출했고,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가 얼마나 뛰어난(그래서 위험한)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당장 폼페이우스를 뒤쫓았다. 이 와중에서 무혈입성 및 항복으로 폼페이우스 영향력 아래에 있던 지역을 자신의 수중에 넣었다.

그러나 결국 폼페이우스가 그리스로 탈출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그제서야 로마에 입성했던 것이다. 강행 돌파를 했으면 잡았을 수도 있지만, 자비와 관용의 사나이 카이사르는 피를 흘리는 것을 원치 않아서 진군이 더뎠던 것 뿐이었다.

5) 파르살루스 전투 전반
드라마에서 안토니우스가 배신의 기미(?)를 보이는 장면. 실은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요청을 받고 충실히 지켰다. 동시에 출발 못한 것은 카이사르가 보유한 배가 적어 한 번에 나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역풍이 거세게 몰아쳐 항구에서 묶이고, 폼페이우스의 우수한 해군에 의한 견제로 조속히 카이사르와 합류하지 못했던 것 뿐이지, 그가 드라마에서 처럼 로마에 머물면서 저울질 한 것은 아니었다.

6) 파르살루스 전투 후
드라마의 두 가상의 주인공 풀로와 보리누스에게 잡히는 폼페이우스. 당연 픽션.
허나 드라마에서 처럼 이집트에서 배신당해 죽는 것은 사실이다. 뛰어났던 인물의 죽음치고는 너무 허망했다.

7) 투기장
드라마 로마에서의 투기장 경기 장면이 몇번 나오는데, 너무 초라하다. 예산 문제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럴 바에는 검투사 양성소에서 싸운다는 설정으로 하는게 나았을 뻔 했다. 당시에는 아직 원형투기장(콜로세움)이 없었지만, 그래도 규모는 최소한 드라마의 그것보다는 컷고, 로마인들은 공정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해서 검투사의 장비도 표준화 되어있었고 공정한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아무리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드라마에서 처럼 완전 무방비에 다수의 검투사랑 싸우게 하는 일은 생각하기 힘들다. 역시 눈물 좀 짜보겠다고 한 설정.

8) 보리누스 원로원 의원이 되다
카이사르가 실제로 자신의 군단에서 백인대장을 역임했던 몇명을 원로원 의원으로 임명한 것은 사실이다.

9) 카이사르 암살(Ides of March 사건) 후의 옥타비아누스
드라마에서는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에서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그때 그는 아그리파와 함께 그리스에 있었다. 카이사르는 로마에 계속 반항하는 파르티아 정벌을 위해 준비 중이었고, 옥타비아누스는 여기에 참전하기 위해 먼저 그리스로 건너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카이사르의 유언의 내용을 전해 듣고, 양아버지와 어머니의 반대를 뿌리치고 유언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브린디쉬 항구에서 카이사르의 추종자들과 모인 군단병들과 함께 로마로 올라오는데, 사전에 미리 키케로에게 아부를 하고 그의 조력을 얻어 돌아오게 된다.
역사와 드라마가 가장 크게 틀리는 부분.

10) 필리피 전투
이 전투는 드라마 처럼 2개의 세력이 격전한 게 아니라, 2v2의 양상이었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양 쪽 다 상대방의 부사령관이 되는걸 거부하여 각자 따로 연합 형태로 전투를 수행하기로 했고, 카시우스와 브루투스 역시 따로 군사를 2개로 나누어 지휘했다.

전투의 진행은 드라마에서 처럼 하루만에 끝난게 아니라 며칠에 걸쳐 진행됐고, 안토니우스가 카시우스를 격파, 브루투스가 옥타비아누스를 격파하는 것으로 1차전이 끝났다. 옥타비아누스는 원래 군사적 재능이 없었던 데다가, 전투 시작 즈음해서 몸이 아파 몸져 누워버렸다. 브루투스는 옥타비아누스의 본진까지 쳐들어 왔는데, 마침 본진에 옥타비아누스가 없어 완전 궤멸에는 실패하고 돌아갔고, 패배의 실의로 자살한 카시우스를 화장하고 전투를 포기해 버렸다. 그리하여 진지를 수습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협공을 받고, 죽음 당하기 전에 자살했다.

드라마와 달리, 둘다 원로원 의원 답게 최후를 맞이했다. 드라마에서 처럼 허망하게 죽지는 않았던 것이다.

11) 세르빌리아의 최후
드라마에서 처럼 무서운 형상으로 저주하며 죽은건 아니었다. 브루투스의 죽음 후 로마를 떠나 별장(빌라)으로 내려가 여생을 마친걸로 보이는데, 딱히 압제가 있었다거나 하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남은 여생이 쓸쓸한 인생이긴 했을 것이다.

12) 안토니우스, 아티아와 연인?
드라마에서 매우 중요하게 나오는 아티아. 역사상에서는 그저 옥타비아누스의 어머니일 뿐, 그 어떠한 활약도 기록되어있지 않다.(게다가 결혼 한 상태)
당연, 드라마에서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은 픽션.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와의 결혼 생활에 충실했다. 40대의 남성에게 20대의 여성은 무척이나 귀여운 법이다.
또한 로버트 사임이 지적하고 있듯이, 안토니우스가 이때부터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져있다는 통설은 무리가 있다.

안토니우스는 필리피 전투 후, 이집트로 돌아간 클레오파트라와 만나 정치적 안건들을 처리하고 그후 4년간 그녀와 만나지도 않았다. 사랑에 빠졌다고는 보기 힘들지 않을까? 그녀와 같이 지내게 된 것은 훨씬 후의 일.
게다가 클레오파트라는 이미 그렇게 젊지도 않았고(28세), 젊은 옥타비아는 현모양처의 표본으로 불리는 여성이었다. (단, 아우구스투스의 선전일 가능성이 있다. 어쨌건 그는 뛰어난 정치술을 가지고 있었고, 특기는 민중 선동이었다. 드라마 처럼 자유분방한 여성이었을 수도 있으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소설의 영역이고, 역사적 사실로써, 일반적으로 그녀는 아릅답고 정숙했다고 전해진다. 아우구스투스도 당 시대에 보기 드문 미남이었으니 그녀의 미모에 대한 얘기는 믿어도 좋지 않을까? )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를 쫓아버린 것은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의 거듭되는 배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실 안토니우스가 동방을 담당하게 된 이유는 개인적 야심도 있기 때문이지만, 군인들의 퇴직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오랜 내전 기간을 거치면서 군인들이 크게 늘었고, 표면상 내전은 이제 종결 되었으니 군인들의 퇴직금을 마련해야 했다. 오랜 기간 카이사르 아래서 근무 했고, 그가 집정관(콘술) 일 때 직접 군단병의 파업을 경험했던 터라 퇴직의 중요성과 자금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을게 틀림 없다. 그리하여 그 자금을 동방에서 모으기로 하고 이 역할은 안토니우스가 맡게 되었던 것인데, 옥타비아누스는 이런 안토니우스를 끊임 없이 배신했다.
폼페이우스의 아들 섹스투스와의 전투에서 거듭 패하고 안토니우스의 도움을 받고도 뒤에 그것을 갚지 않는 가 하면, 끊임없는 중상 모략과 흑색 선전으로 그와 민중을 이반 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원로원 의원과의 사이도 멀어지도록 공작했다.

거듭되는 이런 배신 행위에 진절머리가 난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를 내팽개치게 된다. 그녀의 얼굴만 봐도 속 뒤집히는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을테니 말이다.

13) 악티움 해전
거의 모든 역사가들이 강한 육군을 활용한 지상전을 포기하고 해전을 결행한 안토니우스의 판단을 실수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오래전 본 책 중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참모진의 반대에도 해전을 한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었으며, 전략적으로 뛰어난 선택이었다는 요지의 책이 있었다.

허나 그 당시에는 로마사에 관심이 없어 그냥 개요만 보고 말아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종의 배수진이 아니었을까 한다. 해전이라는 것은 몰살 아니면 대승으로 갈리는데, 이는 바다 위에서는 도망을 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안토니우스의 군대는 동방에서 고용한 용병에 이집트 병사들도 포함되어있는, 말 하자면 썩 미덥지 못한 군사들이었는데, 여기에 로마 본국 정통 정부와의 전투가 되어 로마 군단병들 마저도 동요하는 상태.
이런 상황 하에서 한 두 무리가 도망치기 시작하면 공포는 급속 전염되는게 전쟁인 것이고, 이렇게 어이없이 도주병으로 인한 붕괴를 막기 위해 해전을 선택한게 아닌가 한다.

군사학 전공자가 있으면 의견을 듣고픈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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